여러 미국 드라마의 영향으로 한국에서도 주말 아침에 브런치를 먹는 유행이 생긴 지도 꽤 된 듯합니다. 솔직히 브런치라는 것이 크게 특별한 음식은 아니죠. 주중에 누릴 수 없던 게으름을 피우느라고 놓친 아침끼니를 점심까지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이니까요. 당연히 평소에 먹는 아침과 메뉴와 거의 비슷할 것이고 점심까지 든든해야 하니까 양은 좀 많아야겠구요.
뉴욕지역으로 이사와서 1년만에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브런치 먹으러 나온 곳이 바로 Bubby's Pie Company입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 우선 아기들 데리고 가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고, 원래 이곳이 사과파이로 유명한 곳이라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 Grapefruit Juice & Orange Juice
Fresh Press 쥬스라고 해서 주문했습니다만, 100%라는 말이 없어서 그럴까요? 2% 부족한 신선함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미국에 온 지 얼마 안돼서 Grapefruit 쥬스를 포도쥬스인 줄 알고 시켰다가 엉뚱한 것이 나오길래 상황판단이 바로 안 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쓴 쥬스만 들이킨 경험이 있습니다.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Grapefruit은 포도가 아니라 자몽입니다. 즉, 자몽쥬스인 것이죠.
2. Sourcream Pancake with Peach & Blueberry Compote
일반메뉴에는 없고 스페셜 메뉴에만 있는 팬케익입니다. 사실 팬케익이라는 음식은 팬케익 자체보다 그 위에 어떤 시럽을 얹느냐에 따라 그 맛이 좌우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대중적인 것은 메이플 시럽이죠. 복숭아와 블루베리를 설탕 시럽에 복숭아와 블루베리를 넣고 뭉근히 졸여만든 것이 바로 Compote입니다. 실제로 먹어보니 복숭아와 블루베리 외에 제가 좋아하는 딸기도 들어있어서 더더욱 좋았습니다. 이 중에서도 블루베리는 속된 말로 요즘 한창 뜨는 과일이기도 하죠. 얼마전에 노화방지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수퍼푸드로 대대적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3. Mile High Local Apple Pie & Blackberry Cheese Cake
사과파이는 파이 컨테스트에서 우승한 주인의 실력을 말해주듯 후회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크러스트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큼직큼직 썬 사과가 아주 맛있더군요. 우리에겐 보통 익힌 사과가 굉장히 어색하지만 파이속의 사과는 여전히 열을 가했음에도 사과의 원래 풍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가격대비 괜찮다고 생각했던 맥도날드 사과파이를 다시는 못 먹을 듯 합니다.
생각해보면 미국사람들은 사과파이를 맛으로만 먹는 것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 요즘은 자주 듣을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지극히 미국적인"이라는 영어 표현이 "As American As Apple Pie"일 정도로 미국사람들에게는 애플파이에 대한 아련한 향수가 있는듯 합니다. 마치 명절에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할머니가 구워주신 맛있는 파이를 나눠먹는 추억이 없다면 마치 미국사람이 아닌 것 같은... 우리로 치면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손수 끓여주신 된장찌개, 아니면 겨우내 땅 속에 묻어두고 먹었던 묵은 김장김치 정도 될까요?
디저트로 사과파이 하나는 아쉬워서 Seasonal 메뉴 중 하나인 블랙베리 치즈케익을 먹어보았습니다. 사실 블랙베리를 많이 먹어 본 것은 아니라 깊은 맛은 잘 몰랐지만 씹을 때마다 톡톡 터지는 씨앗의 느낌과 새콤달콤한 맛이 늘상 먹는 스트로베리 치즈케익보다는 훨씬 깔끔한 맛이었습니다.
뉴요커의 느긋한 아점 (브런치)에도 이렇게 각양각색, 다양한 과일들이 여러가지 모양새로 숨어있다는 것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미처 맛보지 못한 과일 주스, 과일 파이와 케익들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지요. 가족과 함께라면 더구나 맛있는 과일과 함께라면 가끔은 이런 호사도 누릴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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